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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언어 속에 한자어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려
진 사실이다. 이 같은 점은 전문 학술용어인 천문학 용어에서도 잘 나타난
다. <표 3>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과 일본은 단종어 한자어가 천문학 용어
전체의 각각 79.6%와 77.5%나 차지하고 있다. 특히 혼종어까지 포함한 한
자어의 분포는 <표 6>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과 일본 모두 87.0%와
85.3%에 이른다. 이는 양국 모두 천문학용어의 대부분을 한자어로 사용하
고 있음을 의미한다.
양국 모두 이처럼 한자어를 많이 활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한자의 뛰어난 조어능력과 편리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처
럼 탁월한 한자의 조어능력은 복잡한 현상이나 사물의 구조 등을 간략하고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전문 과학기술용어에서 많이 활용
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adoptive optics”같은 경우 서양에서 만들어진
용어인데 한국의 경우 “適應光學”으로, 일본의 경우 “波面補償光學” 등 한
자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양국 모두 적당한 한자어를 합성하여 사용하고 있
다. “adiabatic perturbation” 역시 한국과 일본 모두 “斷熱攝動”이라는 한
자어를 채택하였는데 이를 대체할 고유어는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자어가 많이 활용된 두 번째 이유로는 한국과 일본 모두 자국의 고유
어가 만들어지기 전에 한자어가 전래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언
어생활의 기록이 한자어로 되어 왔고, 그 기록어인 한자어가 생활 언어 속
에도 깊이 스며들어 양국민의 몸에 체질화되고 자국화 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 고유어인 음성언어가 문자언어인 한자어에 잠식
되어, 결국 고유어가 현실에서 사용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을 것이다. 우
리나라에서 고유어인 “”이나 “뫼” 대신 현재는 한자어인 “江”이나
“山”이 일반화되어 사용되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마찬가지로 천문학
에서도 고유어인 “미리내” 대신 지금은 “銀河水”를 표준용어로 채택하고
있다.
<표 3>에서는 또한 약간의 차이이긴 하지만, 한국이 일본보다 한자어를
더 활용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단종어 한자어의 경우 한국이 79.6%로
77.5%인 일본보다 약간 더 높으며, 혼종어를 포함한 경우조차도 <표 6>에
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은 87.0%로 85.3%인 일본보다 약간 더 높다. 한국이
한자어를 더 많이 채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외래어보다는 한자어를 일본보
다 더 많이 채택하려 하는 성향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표 6>에서 일본
의 외래어 분포가 한국보다 훨씬 높은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예로 “beam pattern”을 한국에서는 “빛살 形態”혹은 “빛살무
늬”등 한자어를 일부 채택하는데 반해 일본에서는 “ビームパタン”, 즉 외래
어만을 채택하고 있다. 일본이 “beam”에 해당하는 고유어는 없을지라도
한자어인 光線으로 대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는 한국이 한자어로 대치
한 “pattern”같은 경우에는 “形態” 혹은 “模樣”으로 대치가 가능하기 때문
이다. 또 하나의 예로 “오로라(aurora)”의 경우도 한국은 “極光” 혹은 “오
로라(aurora)”로 한자어와 외래어를 병용하여 복수용어를 인정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의 경우에는 “極光”이라는 한자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オロラ”
라는 외래어만을 표준용어로 인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혼종어에서 나타나는 한자어의 특징으로는 한국의 고유어+한자어 비중
이 6.3%로 일본의 4.9%보다 28% 정도 높은 반면 한자어+외래어의 경우
일본이 10.6%로 한국의 8.3%보다 28% 높다. 이는 곧 한국이 일본보다 한
자를 더 선호하는 반면 일본은 한국보다 외래어를 더 선호한다고 볼 수 있
다. 앞서 예를 든 “beam pattern”이나 “오로라(aurora)”도 그 예에 속한다
고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한국이 일본보다 한자어를 자국어로 취급하려는
성향이 더 강하다고도 할 수 있으며, 또 다른 면으로는 일본이 한국보다 서
양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성향이 더 강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외래어의 활용분포
<표 3〉에 제시된 것처럼 천문학 용어 중 한국은 단종어 외래어가 전체
4,058어 중 126.8어로 3.1%를 차지하고, 일본은 195.0어로 4.8%를 차지
하고 있다. 즉, 외래어의 활용이 한자어의 활용에 비해 한국의 경우 3.9%,
일본의 경우 6.2% 밖에 되지 않는다. 이처럼 외래어의 활용이 한자어에 비
해 훨씬 낮기는 하지만 고유어의 활용에 비하면 한국의 경우 1.5배
(3.1%/2.1%), 일본의 경우 3.2배(4.8%/1.5%)나 된다. 이는 한국이나 일본
모두 과학기술용어에서 고유어보다는 외래어를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더 높은 분포로
외래어를 활용하며, 이는 일본이 한국보다 외래어 수용에 있어 더 개방적이
며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이나 일본 모두 외래어의 활용이 고유어보
다 높은 이유로는 과학기술용어가 양국 모두 고유어나 한자어로 대치할 적
당한 용어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예를 들면 “quark”의
경우 한국은 “쿼크”로 일본도 “クォーク”로 외래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
다. 이는 “quark”의 사전적 의미가 명사로서 “양성자, 중성자와 같은 소립
자를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기본적인 입자, 3분의 1이나 3분의 2의 전
하를 갖는 입자”14)를 의미하고 있다. 이를 한국어나 일본어로 간략하게 표
현하기 어려워서 외래어를 그대로 표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또 다른 예로
서 “jet”는 “증기나 액체 따위가 좁은 구멍에서 잇달아 뿜어 나오는 상태”
를 나타내는 말로 한국어로는 “제트”로 일본어로는 “ジェット”로 표기하고
있고 “energy”는 물리학에서, “물체가 가지고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의 양”을 나타내는 말로 한국에서는 “에너지”로 일본에서는 “エネルギー”
라는 원어를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 예를 들 수가 있다.
그러나 앞서 2절의 한자어의 활용에서 지적한 것처럼 외래어에 대치할
적당한 고유어나 한자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래어를 채택하는 경우도
왕왕이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torque”의 경우 한국은 “토크”라는
외래어를 그대로 활용하기도 하지만 “짝힘”이란 고유어도 병용해서 채택하
는데 반해 일본의 경우 외래어인 “トルク”만 받아들이고 있다. 2절에서 예
로 든 “beam pattern”의 경우 한국은 “빛살形態, 빛살무늬模樣”으로 고유
어+ 한자어로 번역하여 사용하는 데 비해 일본은 “ビームパターン”이라는
외래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역으로 일본의 경우 “ionization degree”
를 “電離度”인 한자어를 표준용어로 채택하는데 반해 한국의 경우 “電離
度”인 한자어뿐만 아니라 “이온化度”라는 한자+외래어인 혼종어도 택하고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
혼종어를 포함한 외래어의 활용은 <표 6>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경
우 7.5%이고 일본의 경우 10.4%이다. 또한 혼종어에서 외래어의 활용이
한국의 경우 4.4%(7.5%-3.1%), 일본의 경우 5.6%(10.4%-4.8%)이다. 이
수치는 양국 모두 혼종어에서 외래어 활용이 단종어 외래어 활용보다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표 3>의 전체 대상용어의 분포비율에서 혼종
어가 단종어보다 매우 낮은 것과는 상치된다.
이처럼 외래어가 상대적으로 혼종어에서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천문학
용어가 복잡한 여러 단어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것이 많기 때문으로 추정된
다. 예를 들면 “interstellar plasma”처럼 두 개의 단어로 구성된 경우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이 경우 “interstellar”는 양국 모두 “星間”이란 한자
어를 택할 수 있지만, 사전적인 의미로 “고도로 전리된 가스”라는 의미의
“plasma”의 경우 양국 모두 해당되는 적당한 고유어나 한자어를 쉽게 찾
을 수 없어 외래어를 그대로 채택하고 있는 경우이다.
종합해 보면, 한국과 일본 모두 천문학 용어에서 고유어보다는 외래어가
많이 채택되어 활용되고 있으며, 혼종어의 경우 특히 외래어의 비중이 상대
적으로 높다. 외래어의 채택이 고유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
하는 이유는 외래어를 대치할 고유어나 한자어가 없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지만, 적당한 고유어나 한자어를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유어나 한
자어로의 번역의 까다로움, 고유의미의 전달, 그리고 이해의 편의성 등으로
외래어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서양에서 새롭게 발달
하고 있는 과학기술로 인해 생성되는 새로운 용어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
는 것도 한 원인일 수 있고, 국제어로 통용되고 있는 영어의 세력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이 같은 외래어의 수용성향은 한국보다
일본이 더 강하게 보이고 있다.